
“예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아서,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고 계셨다. 많이 넣는 부자가 여럿 있었다.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, 렙돈 두 닢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다. 예수께서 제자들을 곁에 불러 놓고서, 그들에게 말씀하셨다. ‘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.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,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.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,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.’”
마가 12 장 41-44 절에서
혼돈스럽고 아주 심각한 경제적 상황에도 불구하고, 그리스 제자들이 우리의 선센터를 방문 할 때마다 항상 다양한 향기와 맛의 있는 되기 평범한 보시를 불단에 간절히 올립니다. 이것은 한국인의 성전 정신을 생각 나게 합니다. 이 얼마나 멋진 마음입니까!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영감으로 채우고 우리의 배를 에너지로 채 웁니다.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많을수록이 감사의 표정이 커집니다. 확실히 문화적 일이기도 때문이다. 석가모니 (Shakyamuni) 부처님은 우리의 실천을 인도하는 육 바라밀 (Six Paramitas)를 가르쳐 주셨습니다. 우리의 실천의 첫 번째, 뿌리, 기본 및 GPS는 “관대함(가금 ‘보시’말로만 표현함)” 입니다. 이유가 있습니다.
지난 금요일에 아테네에서 온 그리스 선(禅) 수행하는 멤버들은 3명 불이선원에 왔다. 금융위기 7년째 때문에 아직도 그리스 사람들 법으로서 일주일안에 4백 유로만 (약 45만원만!) 출금 할 수 있다. 아직도 정말 심각한 악몽 중이다. 허브 차와 요리 허브들 몇봉투, 올리브 제품을 가져 왔습니다 : 부엌에서 필요한 아주 간단한 것들. 그러나 이번 주말동안 제가 우리의 선방 불단에서 그 겸손한 제물들 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이 즉시 떠올랐다. “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.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,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.”
전통에 따라 우리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며칠 동안 이러한 보시을 불단에 남겨 두었습니다. 왜냐하면 그들은 단지 “대상”이 아니기 때문에 즉시 취해지지 않고: 이것들은 그냥 소비 될 것 안인다. 그것들 주시는 분들의 마음을 표현 상징들이다. 한국 사찰 옛 예의로서 우리는 보시를 바친 후에 바로 불단앞에 세 번이나 절 합니다. 왜냐하면 우리가 “대상”이나 기부에 굴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. 우리는 기부자의 마음 인 “관대함”인 첫 번째 바라밀타를 절하고 있습니다. 그리고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기증자의 마음에 반영하도록합니다.
그리스에서 온이 겸손한 보시물들 보면 — 마른 허브 차, 마른 요리 허브들, 올리브들 — 부처님의 가르침 (Six Paramitas의 “관대함”)과 예수님 (마가 12:41-44)은 우리 마음 속으로 너무 강력하게 와서 어제 저녁 예불했을때 난 눈물이 솟아났습니다. 가갑고 (즉 유럽북쪽) 부유 한 나라의 사람들이 어떠한 보시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방에있는 가운데 힘들고 위기 악 속에서 살 고 있는 나라들의 사람들은 수행 활동 지원한다. (또는 ‘보시’ 여러가지 있고 다야한 모양들: 자원 봉사 행동들, 음식, 약 등등.) 참 아이러니다. (그렇지만 젊은 독일인 한 여학생은 어제 채식주의 (vegan)과자들을 구워 줬다. 그래서, 이런 것들에 대해 너무 일반화 할 수는 없습니다.) 어쨌든, 부처님의 첫째 바라밀타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처럼 이 가난한 내 제자들 통해서 참 많이 배웠다. 감사의 마음을 드러내는 위대한 거울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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